잘못된 장소
(박선영 개인전  TRILOGY)

2022. 6. 12 - 2023. 6. 23

Artist : 박선영

전시서문 :

권미원의 에세이 잘못된 장소(The Wrong Place, 2000)에서 등장하는 ‘잘못된 장소’와 그에 따른 ‘일시적 귀속’ 은 장소의 특정성과 특정 장소 로부터 벗어나는 유동성 사이에서 장소와 귀속을 새롭게 사유하는 개념이다. 흔히, 자신의 일상과 유리된 낯선 장소 즉,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잘못된 장소는 위험과 불안의 근원이라고 여겨진다. 그 러나 잘못된 장소는 돈 드릴로(Don DeLillo)의 희곡 팔파라이소((Valparaiso, 1999)에 서 주인공 마이클 매저스 키(Michael Majeski)의 잘못된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이 완전히 속해 있는 올바른 장소 또한 어디에도 없으며, 장 소에 뿌리를 둔 근원적 정체성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잘못된 장소의 개념은 장소 결합적 정체성이 더 이상 성립될 수 없음을 재확인시킨다. 동시에, 일상적인 시공간 경험에서 벗어난 불안한 장소 경 험에서 가능해지 는 자아 각성의 효과와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장소 귀속과 이와 연결되는 정착주의에 저항 하는 한편, 그 한계를 보완하고자 한다. 권미원은 이러한 잘못된 장소와 일시적 귀속의 경험은 올바른 장소와 잘못 된 장소를 구분 짓던 우리의 기존의 이원론 적 인식 체계를 해체하고 올바른 장소에 대한 정착주의적인 믿음과 그 믿음에 기댄 정체성의 불안정성을 폭로한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매저스 키에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각성하게 하 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여행을 시도하게 해준 것은 장소의 올바름이 아니라 잘못됨이었고, 귀속 이 아닌 일시적 귀속이었기 때문이다.

Artist Statement


나는 나의 창작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이 장소, 경험, 그리고 기억을 반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998년 나의 큰 오빠는 군대에서 사망했다. 나는 그의 부재 중에 사춘기를 보냈고 2007년 대학 졸업하자마자 독일로 떠났다. 2011 년부터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유목적 주체로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횡단하기를 반복했다. 2020년 초 한국 방 문 중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과 이에 따른 전 세계 국경 봉쇄로 고립되었다.

2023년 현재, (잠정적으로) 한국에 체류 중이다. 내가 경험한 이산과 이주의 영향은 다양한 차원에서 작동한다: 나는 생물학적으로 한국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방인에 가깝다. 또 이주국의 언어로 사고하게 되면서 모국어를 말하고 이해하는 방식에는 틈이 생겼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한국에 거주해 온 한국인 과 대화할 때 드러났다. 조 국과 단절된 관계의 징후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점점 더 문화 생활에 동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나타나 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어디에서나 내 문화 유산은 종종 이주민의 것이다. 나는 한국인처럼 보이고 들리지만, 내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식은 부분적으로 이질적이다. 내 작업이 완벽하게 자전적이고 자기고백적이지 않지만, 내 작 업에는 내가 장소와 관계를 맺거나 작업에서 일련의 대상들을 번역하 는 방식과 방법에는 유사성이 있는데, 이것은 무의식 중에 상실, 변위, 향수, 그리고 기억을 마주치게 한다. 그것들은 특정 시간이나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어떠 한 언캐니한 경험을 이끌어낸다. 나는 그것들을 통해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기대하는 하이브리드 (hybrid) 형태 로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한다. 집에 대한 이미지와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나의 시각적 논리와 사진적 언어를 세계 와 그 안의 나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나는 작품에서 특정 장소의 의미를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진술의 본성이 환영하는 방식으로 풍경을 균질화한다. 또 현재 또는 사진 이미지의 물리적 영향력과 그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미지, 오브제, 기억의 파편들을 현재의 특정 공간에 재위 치시킴으로써 사진이 평면에서 입체로 확장되는 과정과 그 가능성을 탐구한다. ‘다른’ 장소는 부분적으로 상상 속에 속한다. 나에게 이 장소는 한 집과 다른 집이 분리되어 있는 두 대륙으로 나뉘기도, 이주 전과 후, 더 거슬러 이산 전과 후의 시간적 확장이기도 하다. 이 장소에 대한 탐구는 나의 작품과 연구의 개인적, 개념적, 철학적 연결 고 리이다. 나는 우연을 통한 만남,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의 불일치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 장소에 대한 인식이 초근대성 시 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싶다.

Credit 

주최 : 안팎 스페이스
사진 : 안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