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플레이로그

2023. 4. 1 - 2023. 4. 12

Artist : 김명찬, 윤정수, 심유나

전시서문 :


[우리가 만들어 온 게임은 행위성의 거대한 라이브러리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그 안에 정말 다양한, 서로 다른 행위성의 형식들을 기록해 왔으며, 행위자가 되는 여러가지 방식을 탐험하고자 할 때 이를 이용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라이브러리를 이용할 수 있게끔 해 주는 것은 바로 다른 행위성에 이입하는 역량이다.]
- C. 티 응우옌, 『게임: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옮김, 서울: 워크룸 프레스, 2022.

여기, “실험실”에서 “실험자”: 플레이어들은 이들에게 주어진 한 켠의 미니맵에서 그 바깥의 세상을 끌어들여 플레이한다.

이 실험실에서 플레이어는 실험자의 태도로, 마주치는 대상을 분석하며 자신의 인벤토리에 체계적으로 포획해 기록한다. 그러나 혼탁한-한편으로, 생동하는 실험 대상은 플라스크 위에 분석되기를 멈추고 실험자와 섞여 일련의 행위자로 섞여 등장한다. 행위자를 추동하는 감정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실험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관계된 행위자가 지속적으로 변인으로 작동하는 이 실험실에서 통제는 일어나지 못한다.

통제되지 않은 실험실의 결과를 믿을 수 있는가.-

이 실험실의 목적은 결과를 도출해 내기 보다는, 그 과정에 작용하는 행위자들의 행동 양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게임 속 미니게임과 같은 공간에 기록된 플레이어들의 플레이로그를 여기, 당신이 발 딛고 있는 공간에 펼쳐 보임으로써 우리의 라이브러리 한 켠을 채워보고자 한다.

이 미니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당신의 본 게임에 그리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작은 공간에서 일어난 실험의 기록은 이곳에서 시각화 되어 우리를 그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시도한다. 혹시 아는가, 당신은 이 게임의 플레이로그를 따라가며 약간의 경험치를 얻어갈 수도 있겠다.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작가들의 작업과정과 그 방식은 흐릿한 연결고리로 채워져 있지만, 이 전시에서는 참여하는 작가들의 태도를 세계를 분석하는 실험자의 태도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실험에는 여러 맹점이 있습니다.

마주치는 디지털 물질을 분석하며 자신의 인벤토리에 체계적으로 포획해-기록하는 Player1(김명찬)의 실험기록에서는 그 데이터-대상들이 물리적 세계로 치환되면서 갑작스레 무게감을 가지게 됩니다. 인벤토리에 담기는 대상들은 뒤엉켜 혼합되거나 가공되어 본연의 모습이 숨겨 지기도 하고, <360kg>에서는 한 귀퉁이에 오류조각들이 개입하기도 합니다. P1은 물리적 공간에서의 현전과 디지털 공간에서 실재하는 대상의 질서 사이 교차되는 감각에 침투합니다. 규칙적이지 않은 P1의 감각의 개입에 의해 시각화 되는 대상들은 정보화된 탐구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자기 보존을 위한 ‘욕망’을 인간의 본질으로 바라봅니다. 이 욕망은 다른 대상을 만나 여러 정서로 변용되며 인간 존재를 추동합니다. Player2(윤정수)가 포착하는 주체의 동력은 이와 유사한, 욕망에서 비롯한 정서입니다. 정서의 변용 이미지는 신체와 섞여 극화되어 등장합니다. 표현의 주체인 행위자의 정동은 또 다른 대상(선인장-눈-칵테일)과 얽혀 그 다음 루프의 욕망을 매개합니다. P2는 순환되는 정서의 경계를 톺아가며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그를 보존하고자 노력합니다.

Player3(심유나)의 실험 대상은 작은, 유기물입니다. 이들은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본 미생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듯 보여집니다. 기존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미생물-혹은 비인간 행위자들은 주체에 대한 객체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이 객체들은 세계 속 물질으로서 행위성이 잠재되어 있는 행위자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비인간의 구분을 함의하고 있지 않습니다. P3는 객체들의 행위성을 탐구하다 어느 순간 그들이 주체가 되는 과정을 목격하며, 대상으로서 완결되지 않는 바이오의 형상성을 구체화시키고자 시도합니다. P3는 객체가 가지는 유기적인 힘과 조직의 원리를 투영하며 공간과 얽히는 형상들을 바라보지만, 이는 결국 기계적 매체에 의해 재가공된 형태로 포착되며 인간에 의해 제한된 표면 아래에서 등장합니다.

이 플레이어들의 실험에서 그들이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는 정립될 수 없는 가설일지도 모릅니다.

이 전시에서 필자는 이들의 가설에 타당한 결론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 과정을 시각화 시킴으로써 그 바깥의 본게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결말없는-유희적인-미니게임을 플레이해보자는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Credit 

주최 : 안팎 스페이스
글 : 원소영
그래픽 : 이유진
사진 : 안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