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모란디
2023. 2. 8 - 2023. 2. 14
Artist : 엄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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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앉아서 아무도 봐주지 않는 시를 쓰고 에스키스를 그린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뭘 한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감정은 사무적인 일의 효율성을 떨어트리기에 바짝 말린다.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고 싶다. 어제저녁 친구가 씨네21의 김혜리 기자의 트윗을 읽고 나에게 전화했다. 트윗의 내용은 이와 같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문의 글을 쓰지 않다 보면 어느 새벽, 당신은 읽는 이가 기다린대도 긴 글을 쓸 수 없게 됐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리하지 않다 보면 혼자만의 식사도 거칠어진다. 당신의 우주는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 간다.” 그리하여 사실 우리는 비생산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주를 넓히는 중인 것이라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그 순간 나의 우주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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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는 나라에 전쟁이 나도 자신의 방 안에서 평생 정물화만 그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병이 지닌 본래의 속성이나 디테일이 아니었다. 가시적인 것에 내재 되어있는 무언가였고, 이를 찾기 위해 사물을 익명으로 만들었다. 이름 없는 사물은 몽달귀신 같기도 한데, 어쩐지 그의 그림은 따뜻하다. <포스트잇 모란디> 시리즈는 이러한 모란디의 작업방식을 따른다. 창작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생계를 위해 창작활동과는 거리가 먼 분야의 일을 한다. 돈 벌기와 창작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며 살아가는 창작자들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다 균형을 잃기도 한다. 이 균형잡기는 창작자가 창작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된다. 나 역시도 그런 창작자의 한 명으로서 사무실에 앉아있다. 사무실에 앉아 <포스트잇-모란디>를 일기 쓰듯 하나씩 제작한다. 포스트잇을 손에 들고 컴퓨터 모니터로 모란디의 작품을 살펴보며 그날과 어울리는 그림을 택한다. 그리고 그가 정물을 통해 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며 균형잡기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잡기는 나의 우주가 좁아지지 않게 해주는 최소한의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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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주최 : 안팎(AnnPaak)
그래픽 디자인 : 이유진
사진 : 안재우
2023. 2. 8 - 2023. 2. 14
Artist : 엄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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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앉아서 아무도 봐주지 않는 시를 쓰고 에스키스를 그린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뭘 한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감정은 사무적인 일의 효율성을 떨어트리기에 바짝 말린다.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고 싶다. 어제저녁 친구가 씨네21의 김혜리 기자의 트윗을 읽고 나에게 전화했다. 트윗의 내용은 이와 같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문의 글을 쓰지 않다 보면 어느 새벽, 당신은 읽는 이가 기다린대도 긴 글을 쓸 수 없게 됐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리하지 않다 보면 혼자만의 식사도 거칠어진다. 당신의 우주는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 간다.” 그리하여 사실 우리는 비생산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주를 넓히는 중인 것이라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그 순간 나의 우주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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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는 나라에 전쟁이 나도 자신의 방 안에서 평생 정물화만 그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병이 지닌 본래의 속성이나 디테일이 아니었다. 가시적인 것에 내재 되어있는 무언가였고, 이를 찾기 위해 사물을 익명으로 만들었다. 이름 없는 사물은 몽달귀신 같기도 한데, 어쩐지 그의 그림은 따뜻하다. <포스트잇 모란디> 시리즈는 이러한 모란디의 작업방식을 따른다. 창작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생계를 위해 창작활동과는 거리가 먼 분야의 일을 한다. 돈 벌기와 창작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며 살아가는 창작자들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다 균형을 잃기도 한다. 이 균형잡기는 창작자가 창작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된다. 나 역시도 그런 창작자의 한 명으로서 사무실에 앉아있다. 사무실에 앉아 <포스트잇-모란디>를 일기 쓰듯 하나씩 제작한다. 포스트잇을 손에 들고 컴퓨터 모니터로 모란디의 작품을 살펴보며 그날과 어울리는 그림을 택한다. 그리고 그가 정물을 통해 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며 균형잡기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잡기는 나의 우주가 좁아지지 않게 해주는 최소한의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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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주최 : 안팎(AnnPaak)
그래픽 디자인 : 이유진
사진 : 안재우